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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 창작소/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 왕좌 아래의 문

글-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 왕좌 아래의 문

“왕은 왕좌에 앉는 자가 아니다. 왕좌를 떠나지 못하는 자다.”

한은 손바닥 위의 모래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모래알 속에서 작은 시계바늘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째깍.

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도 귀에는 분명 시계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모래알이 뜨거워졌다.

한은 본능적으로 손을 놓쳤다.

모래알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허공에 떠오르더니 왕성 쪽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 따라오라는 건가."

한은 미궁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입구는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15년 전 그날처럼.

15년 뒤의 왕국

왕성으로 향하는 길은 기억 속 풍경과 전혀 달랐다.

숲이었던 곳에는 폐허가 있었다.

마을은 절반만 남아 있었다.

집들은 무너지지 않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느낌이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식탁에는 그릇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하지만 먼지가 수십 년은 쌓인 것처럼 두꺼웠다.

한은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아이 키를 재던 선이 남아 있었다.

842년.

843년.

844년.

그리고 마지막 선.

845년.

그 이후는 아무것도 없었다.

"왜 여기서 멈춘 거지?"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숫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군."

한이 몸을 돌렸다.

허리를 굽힌 노인이 서 있었다.

눈은 희뿌옇게 흐려졌지만 이상하게도 한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노인은 한을 오래 바라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설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돌아왔구나."

살아남은 기록자

노인의 이름은 도윤이었다.

15년 전 왕국의 궁정 기록관.

그리고...

한에게 글을 읽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억 속 도윤은 마흔 정도였다.

지금은 백 살 가까운 노인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도윤은 웃으려 했지만 눈물만 흘렀다.

"너는 하나도 안 늙었구나."

그 말이 한의 심장을 찔렀다.

"밖에서... 정말 15년이 흐른 겁니까?"

도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력 857년."

"그럼 왕국은?"

노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왕국은 아직 살아 있다."

잠시 침묵.

"...하지만 시간이 죽었다."

시간이 멈춘 사람들

도윤은 한을 마을 광장으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동상인 줄 알았다.

광장 한가운데 사람들이 서 있었다.

웃고 있는 아이.

물을 들고 걷던 여자.

칼을 들고 뛰던 병사.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돌도 아니었다.

손을 만지자 피부는 따뜻했다.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다."

"그런데 왜..."

"시간이 멈췄다."

도윤의 목소리는 낮았다.

"15년 동안 그대로다."

한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는 웃는 표정 그대로였다.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윤이 말했다.

"이 아이는 매일 아침 해가 뜨면 한 번 숨을 쉰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하루 동안 멈춘다."

한은 말을 잃었다.

왕좌의 봉인

도윤은 낡은 두루마리 하나를 펼쳤다.

거기에는 왕국의 역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는 검게 지워져 있었다.

도윤이 말했다.

"이건 아무도 읽지 못한다."

"왜요?"

"왕의 피가 있어야 보인다."

한의 손이 두루마리에 닿았다.

검은 글자가 천천히 사라졌다.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왕좌는 시간을 다스리지 않는다.

왕좌는 시간을 가둔다.

한의 숨이 멎었다.

글자는 계속 이어졌다.

봉인이 깨지는 날, 왕국의 시간은 하나가 아닌 수천 갈래로 찢어진다.

도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내용이냐?"

한은 차마 바로 말하지 못했다.

마지막 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후계자는 봉인을 이어받거나, 문을 열어야 한다.

이어받거나.

열거나.

둘 중 하나.

검은 계단

왕성은 가까워질수록 이상해졌다.

멀리서는 폐허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갈수록 새 건물처럼 깨끗했다.

성문은 녹슬어 있었지만 손잡이는 방금 닦은 것처럼 반짝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시간이 뒤섞였다.

왼쪽 복도에서는 어린 시절 궁녀들이 웃고 있었다.

오른쪽 복도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같은 장소.

다른 시간.

도윤은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못 간다."

"왜요?"

"왕좌가 사람마다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한은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왕좌 뒤편.

숨겨진 돌문이 열려 있었다.

아래로 이어지는 검은 계단.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모래알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계단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왔군."

시간을 먹는 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 또 다른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 그림자는 한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

한은 한 걸음 내려갔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웃었다.

"늦었네."

"...누구냐."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나도 마지막 후계자다."

한의 손바닥 속 모래알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 두 개의 왕좌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

다른 하나에는 한과 똑같은 얼굴의 남자가 이미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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