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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 창작소/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 봉인 기사단

글-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제2부 · 왕국의 심장

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 봉인 기사단

“왕을 지키는 군대는 사라졌다. 하지만 왕의 명령을 지키는 군대는 아직 죽지 않았다.”

1. 시간이 멈춘 30초

아르아가 두 손을 모았다.

금빛 눈동자가 완전히 빛으로 변했다.

“멈춰.”

한 마디였다.

심연의 붉은 호수가 얼어붙듯 정지했다.

검은 기사들의 검끝은 허공에서 멈췄고, 흩날리던 모래 한 알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멈췄다.

도현은 한의 어깨를 거칠게 밀었다.

“지금 뛰어!”

“아르아는요?”

“30초밖에 못 버틴다!”

한은 달리기 시작했다.

왕좌 뒤편, 붉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존재하지 않는 길이었다.

아르아가 시간을 멈춘 순간에만 나타나는 길.

도현과 시간을 먹는 자도 함께 달렸다.

그러나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시간을 먹는 자가 멈췄다.

“나는 여기까지다.”

“왜요?”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누군가는 시간을 붙잡아야 하니까.”

그의 몸이 검은 모래가 되어 심연으로 흩어졌다.

멈춰 있던 시간이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2. 왕의 마지막 군대

딱.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첫 번째 기사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벌써?”

아르아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명령이 너무 강해…”

검은 기사들의 갑옷에서 붉은 문양이 빛났다.

시간을 멈춘 공간 안에서도 움직이는 존재.

도현이 이를 악물었다.

“저 문양은 왕인의 인장이 아니다.”

“그럼?”

“봉인의 인장.”

기사 하나가 천천히 투구를 벗었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검은 안개가 얼굴 모양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왕국은 영원해야 한다.”

“후계자는 왕국을 떠날 수 없다.”

“명령을 집행한다.”

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람이 아니잖아.”

도현이 대답했다.

“한때는 사람이었다.”

3. 이름을 빼앗긴 기사들

심연 벽에 오래된 벽화가 나타났다.

왕성의 기사단.

모두 웃고 있었다.

한 명씩 붉은 문양을 받는다.

그리고 왕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마지막 장면.

이름이 하나씩 지워진다.

얼굴도 사라진다.

도현이 말했다.

“왕은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에게 이름을 봉인했다.”

“왜?”

“이름이 없으면 명령만 남는다.”

검은 기사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름이 없다.”

“우리는 왕국이다.”

그 말과 함께 수십 명의 기사가 동시에 움직였다.

아르아의 시간이 깨졌다.

4. 도현의 검

“숙여!”

도현의 검이 붉은 궤적을 그렸다.

첫 번째 기사의 검이 부러졌다.

하지만 기사는 멈추지 않았다.

부러진 검을 그대로 들고 달려왔다.

도현은 두 번째 검격으로 기사의 가면을 깨뜨렸다.

가면 안에서 검은 안개가 흩어졌다.

그 안개 속에서 희미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젊은 남자였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망…”

그 얼굴은 곧 사라졌다.

도현은 검을 내렸다.

“…해방된 거다.”

“죽인 게 아니라?”

“봉인을 끊었다.”

한은 처음으로 검을 들었다.

“그럼 나도 할 수 있나요?”

도현이 한을 바라봤다.

“네 검은 죽이는 검이 아니다.”

“기억을 되돌리는 검이다.”

5. 붉은 검

한의 손바닥 문양이 빛났다.

검이 붉게 변했다.

칼날에 글자가 떠올랐다.

기억하라.

한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두 번째 기사의 가슴을 스쳤다.

갑옷이 갈라졌다.

안개가 흩어졌다.

이번에는 어린 소녀가 나타났다.

“엄마…”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한의 손이 떨렸다.

“기사들이 전부…”

“왕국 사람들이다.”

도현이 말했다.

“왕이 봉인한 영혼.”

6. 시간을 먹는 자의 희생

심연 뒤편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검은 모래 폭풍이 치솟았다.

시간을 먹는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뒤를 보지 마라!”

붉은 호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연 자체가 붕괴하고 있었다.

도현이 외쳤다.

“그가 시간을 대신 붙잡고 있다!”

한은 뒤를 돌아봤다.

시간을 먹는 자의 몸은 이미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후계자가 밖을 향해 달리는구나.”

그 말이 끝나자 그의 모습은 완전히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심연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7. 회색 절벽으로 가는 길

다리 끝에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 벽에는 오래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북쪽으로 가지 마라.

하늘을 보면 돌아오지 못한다.

도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왕이 남긴 경고다.”

“거짓말이었네요.”

“절반만.”

“밖으로 나가면 왕국으로는 돌아오기 어렵다.”

“왜요?”

도현은 대답 대신 통로 끝을 가리켰다.

멀리 희미한 빛이 보였다.

은빛이 아니었다.

푸른빛이었다.

한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8. 쫓아오는 기사단

뒤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봉인 기사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훨씬 많았다.

열 명.

스무 명.

백 명.

심연 전체가 검은 갑옷으로 가득 찼다.

가장 앞 기사가 투구를 벗었다.

이번 얼굴은 낯익었다.

한은 숨이 멎었다.

“…본부장님?”

아니었다.

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한과 똑같았다.

또 다른 후계자.

그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369번째 후계자.”

“귀환을 명령한다.”

도현이 한을 앞으로 밀었다.

“달려!”

9. 절벽 끝에서

통로가 끝났다.

눈앞에는 끝없는 절벽.

절벽 아래는 구름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푸른 하늘 아래 거대한 숲과 강, 도시가 보였다.

왕국 밖의 세계였다.

한은 말을 잃었다.

“정말 있었어…”

나침반 바늘이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공중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었다.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길.

하지만 한에게는 선명했다.

마지막 장면

한이 첫 계단에 발을 올리는 순간.

절벽 반대편에서 누군가 걸어 올라왔다.

푸른 망토.

검은 머리.

금빛 눈동자.

아르아와 닮았지만 훨씬 성숙한 얼굴.

그녀는 한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첫마디를 건넸다.

“생각보다 늦게 왔네.”

“나는 세이라.”

“왕국 밖에서 너를 기다린 첫 번째 후계자다.”

한의 뒤에서는 봉인 기사단의 검이 동시에 뽑혀 나왔다.

앞에는 세이라.

뒤에는 왕국.

한은 처음으로 왕국과 세상 사이의 경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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