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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 창작소/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쉰 번째 이야기 : 왕이 되지 않은 동생

글-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제2부 · 왕국의 심장

쉰 번째 이야기 : 왕이 되지 않은 동생

“형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왕이 되었다. 동생은 형을 지키기 위해 왕이 되지 않았다. 비극은 두 사람 모두 약속을 지켰다는 데서 시작됐다.”


1. 아온

“저 사람은 내 형이야.”

아이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검은 탑 위에는 죽지 않은 왕 카르엔이 서 있었다.

아니.

아린.

왕국 최초의 후계자.

기록수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사람.

왕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사람.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이름과 몸을 바꾸며 왕국을 지배해 온 존재.

그의 동생이 지금 한의 앞에 서 있었다.

아온.

기록에서 지워진 최초의 열세 번째 후계자.

아온은 울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닦지 않았다.

마치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슬픔이라 이제야 흘릴 자격을 얻은 사람처럼.

카르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온은 죽었다.”

아온이 웃었다.

“그래.”

“내가 직접 보았다.”

“그것도 맞아.”

카르엔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온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형.”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죽인 게 누구였는지도 기억나?”

왕관의 붉은 빛이 순간 흔들렸다.


2. 왕관을 쓰던 날

아온이 한의 손을 잡았다.

“봐.”

“뭘?”

“내가 죽었던 날.”

한이 손을 빼기도 전에 세상이 뒤집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록수 아래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

아이를 품에 안은 부모.

모두 한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아린!”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왕이 되어 주십시오!”

젊은 아린은 기록수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나무로 만든 왕관이 들려 있었다.

아르아가 그의 앞을 막았다.

“쓰면 안 돼.”

“사람들이 죽고 있어.”

“왕관을 쓰면 더 많은 사람이 죽어.”

“지금 죽는 사람들은?”

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람들에게 미래를 위해 죽으라고 말하라고?”

아르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소년 하나가 군중 사이를 헤치고 뛰어나왔다.

아온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모습.

“형!”

아린이 돌아봤다.

아온은 숨을 헐떡이며 그의 손에서 왕관을 빼앗았다.

“이거 쓰지 마.”

“돌려줘.”

“싫어.”

“아온.”

“약속했잖아.”

아온은 울고 있었다.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잖아.”


3. 형이 선택한 것

아린은 동생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이 죽고 있어.”

“알아.”

“오늘만 백스물일곱 명이 죽었다.”

아온의 입술이 떨렸다.

“알아.”

“내일은 더 죽는다.”

“그래도 안 돼.”

아린이 처음으로 화를 냈다.

“왜!”

아온도 소리쳤다.

“형이 시간을 주는 게 아니니까!”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온은 왕관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다른 사람에게서 가져오는 거잖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왕국 밖의 사람.”

“백 년 뒤에 태어날 아이.”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시간을 훔쳐서 지금 사람들에게 주는 거잖아!”

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온이 울먹였다.

“모른다고 없는 사람이 아니야.”


4. 한 사람이라도

아린은 한참 뒤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아온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다음 말은 달랐다.

“그래도 하겠다.”

“…형?”

“나는 눈앞의 사람들을 버릴 수 없어.”

“그럼 보이지 않는 사람은 버려도 돼?”

아린이 눈을 감았다.

“나를 미워해도 좋다.”

그는 동생의 손에서 왕관을 가져갔다.

“내가 죄인이 되겠다.”

아온이 팔을 붙잡았다.

“형!”

“오늘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린은 왕관을 썼다.


5. 첫 번째 기적

세상이 빛으로 뒤덮였다.

병들었던 아이가 눈을 떴다.

노인의 기침이 멈췄다.

말라붙은 우물에서 물이 솟았다.

죽어가던 곡식이 일어섰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왕이다!”

“왕께서 우리를 구하셨다!”

“아린 왕 만세!”

수천 명이 무릎을 꿇었다.

단 세 사람만 그러지 않았다.

아르아.

아온.

그리고 아린 자신.

왕관을 쓴 아린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끝에 검은 모래가 묻어 있었다.

그날.

왕국에서 백스물일곱 명이 살아났다.

그리고 왕국 밖 어딘가에서—

백스물일곱 명이 태어나지 못했다.


6. 처음 생긴 검은 숲

기억이 바뀌었다.

왕국 밖.

아무도 살지 않는 들판에서 나무들이 검게 말라 죽었다.

강 하나가 사라졌다.

마을에서는 임신한 여인들이 같은 날 아이를 잃었다.

누구도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기록수는 알고 있었다.

나무껍질에 검은 반점이 생겼다.

하나.

열.

백.

아르아가 그것을 보며 울었다.

“시작됐어.”

아온이 물었다.

“뭐가?”

“시간의 빚.”


7. 열세 번째 후계자의 역할

그날 밤.

아르아는 아온을 기록수 안으로 데려갔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나무 중심에는 열두 개의 빛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 하나.

“저건 뭐야?”

“너.”

“나?”

“열두 후계자는 기록을 지켜.”

아르아가 말했다.

“하지만 기록 자체가 잘못되는 날이 올 수도 있어.”

“그때는?”

아르아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누군가는 기록 밖에 있어야 해.”

“왜?”

“책 안에 있는 사람은 책의 결말을 바꿀 수 없으니까.”

아온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르아가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열세 개의 선이 나타났다.

“열세 번째 후계자는 왕을 계승하지 않아.”

“왕국도 계승하지 않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키는 사람이야.”


8. 형제의 두 번째 약속

아온은 매일 형을 찾아갔다.

왕관을 벗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린도 들었다.

“조금만 더.”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역병이 끝날 때까지만.”

역병이 끝났다.

“이번 겨울까지만.”

겨울이 끝났다.

“전쟁까지만.”

전쟁도 끝났다.

그러나 왕관을 벗지 않았다.

왕국은 점점 풍요로워졌다.

사람들은 더 오래 살았다.

아린은 성군이라 불렸다.

그리고 왕국 밖에서는 검은 숲이 점점 넓어졌다.

어느 날 아온이 물었다.

“언제 벗을 거야?”

아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형제는 서로 만나지 않았다.


9. 왕관이 선택한 주인

문제는 아린이 늙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왕관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린이 왕관을 벗으려 하자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살과 왕관이 붙어 있었다.

아르아가 말했다.

“왕관이 널 기억하고 있어.”

“없앨 방법은?”

아르아는 아온을 바라봤다.

“있어.”

아린도 동생을 바라봤다.

그 순간.

아온은 알았다.

자신이 왜 열세 번째인지.

열세 번째 인장만이 왕관의 기록을 끊을 수 있었다.


10. 왕을 죽이러 간 동생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아온은 검 하나를 들고 왕성으로 들어갔다.

형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왕관을 베기 위해서였다.

아린은 왕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올 줄 알았다.”

“형.”

“그래.”

“마지막으로 물을게.”

아온의 검이 떨렸다.

“왕관을 벗을 거야?”

아린은 동생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못 벗는다.”

아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못 벗는 거야?”

잠시 침묵.

“안 벗는 거야?”

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아온은 검을 들었다.

“그럼 내가 벗겨 줄게.”


11. 기록에서 지워진 싸움

아온의 검이 왕관을 향했다.

아린은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이 닿기 직전.

왕관이 스스로 움직였다.

검은 빛이 폭발했다.

아온의 몸을 꿰뚫었다.

“아온!”

아린이 왕좌에서 뛰어내렸다.

처음으로 왕관의 의지에 저항했다.

동생을 끌어안았다.

“아온! 눈 떠!”

아온은 피를 토하면서도 웃었다.

“형.”

“말하지 마.”

“왕관…”

“말하지 마!”

“형보다… 강해졌네.”

아린이 울었다.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마.”

아온은 떨리는 손으로 형의 왕관을 만졌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그 순간 열세 번째 인장이 빛났다.

아온은 자신의 가슴에서 인장을 뜯어냈다.

살이 아니라 빛이 뜯겨 나왔다.

그것을 기록수 뿌리 속으로 던졌다.

왕관이 비명을 질렀다.

아린이 소리쳤다.

“뭘 한 거야!”

아온이 마지막으로 웃었다.

“다음 사람에게 선택을 남겼어.”

그리고 눈을 감았다.


12. 아린이 저지른 가장 큰 죄

한은 기억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온이 죽은 뒤.

아린은 동생의 시신을 안고 기록수로 갔다.

아르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려줘.”

아린이 말했다.

“안 돼.”

“시간을 돌려.”

“죽음은 되돌릴 수 없어.”

“내가 왕이다.”

아르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아린은 동생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왕관에 손을 올렸다.

“그렇다면…”

아르아가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아린, 하지 마!”

“아온이 죽었다는 기록 자체를 없애겠다.”

한은 숨을 멈췄다.

그게 아니었다.

아온이 기록에서 사라진 이유는 왕이 죽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린은 동생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이 존재했다는 기록을 지웠다.


13.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다

기록수의 잎에서 아온의 이름이 사라졌다.

책에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아르아의 기억에서도.

마지막에는 아린 자신의 기억에서도.

그래서 아무도 아온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린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열세 번째 인장은 이미 기록수 뿌리로 들어간 뒤였다.

기록 밖에 있는 것은 지울 수 없었다.

아온의 몸은 사라졌다.

이름도 사라졌다.

그러나 선택은 남았다.

수백 년 동안 뿌리 속에서.

다음 사람을 기다리며.


14. 왜 한이었는가

기억이 끝났다.

한은 회색 절벽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온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한이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이게 나한테 온 거야?”

아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맞아.”

“반?”

“인장이 널 선택한 건 맞아.”

“왜?”

아온이 대답하려는 순간 세이라가 끼어들었다.

“잠깐.”

그녀의 표정이 심각했다.

“이상해.”

“뭐가?”

“인장은 기록 밖에 있었어.”

“그래서?”

“그렇다면 왕국 안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갈 수 없어.”

모두의 시선이 한에게 향했다.

43화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 아이는 왕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다.

한의 심장이 빨라졌다.

아온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너였어.”


15. 바깥에서 온 아이

도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아온.”

목소리가 낮았다.

“그 이상은 말하지 마라.”

한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왜요?”

“한.”

“또 숨기려고요?”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한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분노했다.

“언제까지요?”

“내가 누구인지까지 숨길 겁니까?”

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숨기려는 게 아니다.”

“그럼 말해요.”

“말하면 네가—”

“제가 뭘요!”

도현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아온이 말했다.

“내가 말할게.”

도현이 돌아섰다.

“안 돼!”

아온의 금빛 눈이 빛났다.

“이 아이는 알아야 해.”


16. 한의 진짜 출생

아온이 손을 내밀었다.

새싹의 잎 하나가 떨어졌다.

잎이 허공에서 빛으로 변했다.

새로운 기억이 나타났다.

15년 전.

아니.

왕국의 시간으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

회색 절벽 밖.

푸른 하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도현이 절벽 아래를 달리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갓난아기 하나가 있었다.

뒤에서는 누군가가 쫓아오고 있었다.

도현이 문을 향해 뛰었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현!”

도현이 멈췄다.

한은 그 여자의 얼굴을 보려 했다.

그러나 기억이 흔들렸다.

얼굴만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아기를 도현에게 건넸다.

“이 아이를 왕국 안으로 데려가.”

“당신은?”

“나는 못 가.”

“같이 갑시다!”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언젠가 이 아이가 돌아오면…”

그 순간 기억이 갈라졌다.

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누구야?”

여자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

눈물 맺힌 눈.

목에는 나뭇잎 모양의 목걸이.

그리고—

금빛 눈동자.

한의 몸이 굳었다.

아르아와 같은 눈.

아온과 같은 눈.

여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아들에게 전해 줘.”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고.”


마지막 장면

기억이 끊어졌다.

한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

그 단어가 낯설었다.

죽었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은 천천히 도현을 바라봤다.

“살아 있어요?”

도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래.”

한의 숨이 멎었다.

“어디 있는데요?”

도현이 회색 절벽 너머를 바라봤다.

푸른 하늘 아래.

멀리 보이는 거대한 검은 숲.

“왕국 밖.”

“어디요?”

도현이 대답하려는 순간.

쿵—!

땅이 흔들렸다.

두 번째 기록수의 새싹이 순식간에 사람 키만큼 자랐다.

가지 하나가 바깥세계를 향해 뻗었다.

그리고 잎 위에 글자가 나타났다.

한의 어머니가 있는 장소.

그러나 글자를 읽은 세이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기록수의 무덤』

한이 물었다.

“거기가 어디죠?”

세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온도 웃음을 잃었다.

마침내 도현이 말했다.

“첫 번째 기록수가 죽은 곳이다.”

그리고 잠시 뒤.

“네 어머니가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 순간 검은 탑 위의 아린이 낮게 웃었다.

“그래.”

“가거라.”

“그리고 네 어머니에게 물어봐라.”

한이 고개를 들었다.

아린의 다음 말이 회색 절벽 전체에 울려 퍼졌다.

“왜 자신의 아들을 왕국에 버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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