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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왕국의 마지막 후계자

두 번째 이야기: 사라진 문장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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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사라진 문장의 도시

숲의 끝자락을 지나쳐 처음 맞이한 세상은, 엘리아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으로 가득했다. 탁 트인 들판 너머로 높은 성벽이 우뚝 솟은 도시가 있었다. 그곳은 벨모라라 불리는, 왕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살아남은 자유 도시였다. 사람들은 바삐 오가며 물건을 나르고, 시장에서는 낯선 향신료와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이 뒤섞인 활기가 느껴졌다.

엘리아스는 그 모든 것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리안나의 뒤를 따랐다.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하지만 리안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린 단지 구경하러 온 게 아니야. 여기엔 ‘왕의 문장’을 보관하고 있는 고서관이 있어. 그것만 찾을 수 있다면, 너의 혈통을 입증할 증거도 얻을 수 있을 거야.”

엘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거리의 풍경에 붙들려 있었다. 마치 그 안에 뭔가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고서관은 도시 중심부, 오래된 사원의 지하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음울한 분위기, 돌로 만든 회랑과 깎아지른 듯한 계단은 분명 과거의 찬란한 시간들을 지탱해온 흔적이었다. 리안나는 아는 듯 익숙하게 문을 열었고, 안에는 은빛 머리칼을 한 사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안나... 정말 오래간만이군.”

그의 이름은 탈마린. 왕국의 멸망 이후,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는 엘리아스를 한 번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펜던트… 진짜였군. 아스테론 왕가의 마지막 표식. 하지만, 너희가 찾으려는 ‘왕의 문장’은 쉽지 않을 거다. 그것은 이미 도둑맞은 지 오래니까.”

엘리아스는 눈을 크게 떴다. “도둑맞았다고요? 누가요?”

탈마린은 조용히 문서를 펼쳤다. 그 안에는 검은 가면을 쓴 자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아래에는 ‘밤의 칼날’이라는 조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혼란 속에서 태어난 그림자야. 오래전 왕국이 무너질 때, 왕실의 유물과 기록을 탈취해 숨어들었지. 그 문장은 지금, ‘수정의 항구’라는 도시의 뒷골목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단, 그곳엔 목숨을 걸어야 할 걸세.”

엘리아스는 눈을 감았다. 낯선 땅, 알 수 없는 적들,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 불안도 두려움도 있었지만, 가슴속 어딘가에선 뜨거운 열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고서관 안으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붉은 스카프를 두른 소녀였다. 한 손에는 단단한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마법진이 새겨진 작은 책을 들고 있었다.

“여기가 엘리아스가 있다는 곳이 맞나요?”

리안나가 경계하며 다가서려 하자, 탈마린이 먼저 나섰다. “진정하게. 이 소녀는 우리 편일세. 이름은 카이아. 불의 탑에서 수련을 마친 마법사지. 네 여정에 도움이 될 거야.”

카이아는 조심스럽게 엘리아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널 돕는 이유는 단 하나야. 잃어버린 왕국 속엔 내 스승이 찾던 금서가 있어. 너의 여정은 곧 나의 여정이기도 해.”

이로써 엘리아스는 첫 번째 동료를 얻었다. 목적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은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떠날 ‘수정의 항구’는, 그가 지금껏 경험한 어떤 세계보다 거칠고 복잡한 땅이 될 터였다.

리안나가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엘리아스. 단순히 문장을 되찾는 것만이 아니라, 네가 어떤 왕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될 거야.”

그 밤, 도시는 고요했지만 엘리아스의 가슴은 다시 한 번 요동쳤다. 검은 물결처럼 다가오는 어둠 속에서, 그는 비로소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음 편 예고:
엘리아스와 동료들은 ‘수정의 항구’로 향한다. 그곳에는 음모와 배신, 그리고 ‘밤의 칼날’이 준비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엘리아스는 새로운 능력의 조짐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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